“원장님도 탈모약 드세요?”
진료실에서 환자가 필자에게 던진 말이다. 사실 필자는 탈모약을 먹고 있지 않고, 영양제와 토닉만 뿌리고 있다. 굳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겨질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통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관심은 우리 원장님이다.
원장님도 쓰는 샴푸인지, 원장님도 바르는지, 원장님도 탈모약을 드시는지… 이런 질문들이다.
눈썹이 빈약해 눈썹 이식을 하러 오신 환자분은 대부분이 필자의 눈썹을 가르치며 선망의 눈빛을 보낸다.
“원장님 눈썹처럼 짙게 해주세요. 저 좀 떼어서 주시면 안 돼요?”
이렇듯 진료실에서 모델은 화면 위의 환자 전후 사진 아니면 필자가 대상이 되어 도마 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탈모 상담하던 여성 환자가 필자의 얼굴을 빤히 스캔하더니 한 마디 던진다.
“원장님은 좋겠어요, 털이 많으니까…”
웃어야 할까?
- 진료실 탈모 이야기 中에서 -
머리 심는 정신과 의사로 잘 알려진 기문상 원장이 그동안의 치료 경험을 바탕으로 한 메디컬 에세이 ‘진료실 탈모 이야기’로 다시 한번 친근하게 다가왔다.
기 원장은 엔비클리닉 안산점에서 20여 년간 탈모 치료를 해 오고 있으며,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의 창단 멤버이자 대한미용성형레이저의학회의 회장을 거쳐 현재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는 이른바 대한민국 탈모 치료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양 학회를 기반으로 수없이 강단에 오르고, 탈모 및 미용의학 관련 교과서를 집필한 그가 이번에는 의사가 아닌 환자를 위한 에세이를 선보였다고 하니 더욱 세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대한민국은 이미 탈모 국가에 접어들었습니다. 천만 명이 넘는 탈모인들이 다양한 각자의 치료법을 사용 중이며, 탈모 진료실을 방문하고 있어요. ‘진료실 탈모 이야기’는 탈모 환자를 보면서 그들에게 느끼는 필자의 감정과 전문가적 관점에서 실제 케이스에 따라 조언할 수 있는 탈모 치료 경험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이야기식으로 쉽게 풀어서 전달하려고 쓴 책이에요.”
탈모로 스트레스받는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기 원장이 ‘진료실 탈모 이야기’를 쓴 이유다.
정신과 의사가 탈모 치료 명의가 된 사연
기문상 원장이 안산에 엔비클리닉을 개원한 때는 2000년 3월. 의약분업이 처음 실시되던 그해는 개원의에게는 참으로 혹독한 시기였고, 기 원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신과 진료만으로는 운영이 여의치 않았던 그때 모 제약회사 직원이 찾아와 “원장님, 혹시 이런 진료 한 번 해보지 않으시겠어요?”라며 약물 리스트를 내밀었다.
비만 치료 약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비만 치료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정신과 의사이다 보니 비만 환자들이 찾아와 하소연하고 어려움을 털어놓는 일이 많아 그들과 공감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이후 비만 환자 사이에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같이 공감해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비만 전문의로의 명성은 높아졌고, 지방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왔다.
“비만 치료라는 게 약물만 잘 쓴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환자와 개인적인 소통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환자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얘기하는 의사는 흔치 않잖아요.”
치료만 잘한다고 누구나 명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예약 환자가 제시간보다 늦었는데, 이유인즉슨 아이가 장염으로 설사가 심해 병원에 입원시키고 오느라 늦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주 환자가 왔을 때 기 원장은 “아이는 좀 좋아졌습니까? 맘고생이 심하셨겠어요”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환자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또 한 환자는 다이어트 비만 환자였는데, 살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10분 동안 자기 얘기만 하고 돌아갔다. 다음 주 그 환자가 와서는 “그동안 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이 너무 답답하고 힘들었는데, 기 원장님 만나면서 좀 나아진 것 같다”라고 털어놓았다. 물론 이 환자는 누구보다도 기 원장의 진료와 처방에 잘 따랐고, 치료 경과도 성공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 원장은 안산에 있는 골프 연습장을 등록했다.
거기서 기 원장 옆에서 스윙을 하고 있는 세 명의 남성을 보게 되었는데, 고개를 숙이고 스윙을 하는데 정수리 부분이 훤하게 비어 있어서 나이가 좀 있은 중장년의 신사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윙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는데, 모두 30대의 젊은 청년들이었던 것이다.
‘비만뿐만 아니라 탈모로도 고민하고 있는 환자들이 많겠구나. 그들의 고민에도 귀 기울이고 같이 공감해야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때 기 원장은 숙명처럼 직감했다. 당시만 해도 항노화 클리닉이 전국적으로 생겨나고 있을 때였지만, 탈모 클리닉은 말 그대로 미지의 세계였다.
기 원장은 즉시 탈모 클리닉을 세팅했고, 약물과 주사 치료를 시작했다. 이후 두피 관리실을 만들고, 마지막으로 모발 이식술까지 세팅을 마치면서 안산 최초의 탈모 전문 병원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나면서 기 원장은 탈모 치료의 명의로 불리고 있다.
탈모, 치료만큼 중요한 것은 ‘인식’
“2000년대 초기 ‘비만도 의사를 찾아 치료와 관리를 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가는 상황이었어요. 따라서 두피 탈모 분야도 비만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의사들이 관심을 두고 공부한다면 두피센터나 민간요법에 의지하며 주먹구구식으로 과학적인 치료 기회를 놓치고 있는 환자들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두피와 모발 관련 시장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데 반해 탈모 환자 대부분은 의사가 아닌 외국계 모발 관리 회사나 제품에 의존하고 있었다. 또한, 미용실이나 샵에서 두피와 모발 관리를 하다 보니 제대로 된 탈모 치료가 이뤄질 리가 만무했다.
기 원장을 포함한 뜻이 맞는 의사 15명의 의사가 의기투합하여 2004년 창립 발기인 총회를 열었고, 이 학회가 바로 지금의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의 토대가 된 대한두피모발학회다.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는 대한미용성형레이저의학회와 함께 국내 최대의 비만, 탈모, 미용 분야를 선도하고 있는 학회로 이 양 학회 모두에 기 원장은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각설하고, 기 원장은 탈모 치료를 위해서는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있어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타 병원에서 오는 환자들의 처방전을 보면 화려한 약 폭탄일 뿐 실질적으로 명의다운 처방이 없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탈모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 평생 관리하는 질환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탈모란 성장기 시절을 다 누리지 못하고 빨리 빠진 모발이 다시 나지 않는 질환이다. 이 때문에 약의 효과는 덜 빠지게 하거나 빠진 모발이 빨리 자라고 굵어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젊은 환자들은 약에 대한 의심도 많고, 인터넷 지식으로 단단히 무장하고 와서 의사와 싸우려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일일이 다 대응할 수는 없어요. 잘못된 지식은 바로 잡아주면 되고, 그보다도 환자의 아픔을 보듬어주고, 같이 공감해 주는 게 인식을 바꿔주는 첫걸음이에요.”
우리의 소원은 발모, 모든 탈모 환자가 웃을 때까지…
‘진료실 탈모 이야기’에는 10대에서 50·60대까지 다양한 탈모 환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머리가 빠져 아버지를 원망하는 고등학생, 탈모로 연애는 물론 결혼까지 포기하려는 젊은이, 흰머리 때문에 할머니로 오해받아 비분강개한 40대 주부의 사연 등등 말 그대로 웃픈 현실의 탈모 환자들의 이야기다.
이런 다양한 환자의 사연이 가슴 짠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곧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탈모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탈모 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에세이기 이전에 탈모가 걱정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왜냐면, 이 책에는 탈모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치료까지 모두 담고 있으며, 탈모 치료를 위해서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확히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년 초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소원이나 계획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주로 여성은 다이어트, 남성은 발모인 경우가 많아요. 머리털이 많은 분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데, 탈모 환자 입장에서는 소원일 정도로 절실하죠. ‘머리카락만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 제 재산의 절반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은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탈모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 입장에서 좀 더 환자의 고통을 공감해야 한다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오늘도 기 원장은 진료실에서 총성 없는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공짜를 밝히면 대머리가 된다느니, 탈모약을 먹으면 정력이 약해진다느니, 탈모약을 잘못 만지면 기형아가 나온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문들과 여전히 민간요법을 가장한 수많은 카더라 치료들과의 싸움을 말이다.
그리고 기문상 원장은 ‘경청’과 ‘공감’으로 탈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모든 탈모 환자가 웃을 수 있을 때까지 그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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