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를 이어온 피부과의 명가, 마곡동 계피부과의원

先親에 이어 계희상 원장과 함께  계피부과의원에서 인생의 2막을 열어가는 ​​​​​​​대한민국 피부과 발전의 주역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학교실 계영철 명예교수

김은식 기자 승인 2021.02.24 14:51 의견 0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서 환자들을 진료하시는 모습을 봐 왔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저에게 묵묵히 의사의 길을 보여주셨고,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당연히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들 계희상 원장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어느덧 이렇게 훌륭한 의사가 되었습니다. 고대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정년 퇴임을 맞았고, 이제는 마곡동 계피부과의원에서 아들과 함께 개원의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피부과 발전의 견인차 역할은 물론 세계 의학 역사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피부과계의 명의 계영철 명예교수(고려대학교 의과대학 피부과학교실, 이하 교수)가 개원의로 의사 인생 2막을 시작했다.

1987년부터 35년 간 몸담았던 고대의대 피부과학교실을 지난해 8월 31일 정년퇴임하고, 올해 1월 강서구 마곡동에서 아들 계희상 원장과 함께 계피부과의원 개원한 것. 그동안 계 교수의 실력과 인품,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환자에게든 웃음을 잃지 않는 친절함을 기억하는 환자들에게 그의 개원 소식은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정년 퇴임 후 이미 알려진 명성답게 많은 병원에서 계 교수를 초빙하기 위한 러브콜이 줄을 이었지만, 그는 모든 요청을 조용히 거절했다.

"대학에 있다가 나오니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섭섭한 면이 없지는 않지요. 하지만 피부과가 대학이 전부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대학병원은 대학 교수대로 개원병원은 개원의 대로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대학에서 충분히 했으니 개원의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예전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또 아들에게는 의사로서의 아버지 모습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아울러 저희 계피부과의원에는 3대를 이어가는 피부과 전문의라는 자부심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겸손과 친절로 대변되는 계 교수이지만 '3대 피부과 의사'라는 타이틀에는 무엇보다도 강한 자부심을 내비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에서 아들까지, 그것도 같은 과목을 나란히 이어간다는 것은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그 사례를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일, 그렇지만 가업처럼 이어진 직업이기에 더욱 책임이 따른다고 계 교수는 말한다.

이에 엠디포스는 3대를 이어가는 계영철 교수의 피부과에 대한 사랑과 앞으로의 목표를 듣기 위해 마곡동 계피부과의원을 찾았다.

의사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를 잇는 가업의 철학' 지켜갈 것

계피부과의원이 위치한 곳은 강서구 마곡동으로 발산역 1번 출구라고 하면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계영철 교수는 아무래도 흔한 성씨가 아니기 때문에 계피부과의원 역시 한번 들으면 어지간해서는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정말 훌륭한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실력이나 인품에서나 모두 존경받는 스승으로 잘 알려진 계 교수이기에 '개원의로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었을까'하는 기대감으로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계 교수는 늘 대학에서 보였던 사람 좋은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었고, 바뀐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개원 초라 보이는 약간의 여유 정도라고 하겠다.

그런 여유를 기회로 기자는 계 교수에게 평소와는 달리 그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제 아버님 故 계택순 원장님께서는 피부과 전문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피부과 전문의가 드물었고, 저도 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죠. 이렇게 얘기해도 되나 싶지만 사실 아버님께서는 환자에게 그렇게 친절한 분은 아니셨습니다. 환자들을 야단 치시는 일이 많았죠. 저도 환자들만큼 많이 혼났습니다. 한번은 아버님께서 그렇게 아끼시던 군자란을 배드민턴 채로 부러트린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 얼마나 혼이 났던지 지금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늘 환자들을 야단치는 무서운 의사, 어린 시절 계 교수의 눈에는 아버지가 그렇게 비쳤다. 하지만 보건위생에 대한 개념이 거의 전무했던 60·70년대를 돌이켜보면 환자들에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렇게 야단을 맞고 혼이 났지만, 그래도 계 교수는 늘 아버지 곁에서 병원 일을 도왔다. 잔심부름을 하고 때로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약을 섞어 연고를 만들기도 했다.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병원은 어린 시절의 계 교수에게 놀이터였던 셈이다.

그렇다, 故 계택순 원장은 피부질환의 발생 원인과 환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와 집중적인 진료를 통해 많은 환자들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조성한 피부보건의학의 선구자로 피부과 전문의를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시절인 1961년 영등포 '계피부과'를 설립한 바로 그 의사다.

​계 교수는 이후 아버지의 바람과 주변의 기대대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당연스럽게 피부과를 선택했다. 이후 그는 계피부과의원이 아닌 대학에 남기로 결정하고 아버지와는 같지만 다른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영등포 계피부과는 1981년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피부과 명의들이 故 계택순 원장에 이어 병원을 승계·인수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피부과의원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아버님께서 80년 뇌암으로 쓰러지셨고, 84년 제가 전문의 2차 시험을 치르기 며칠 전 돌아가셨습니다. 저에게는 당신께서 걸어오신 것처럼 저 역시 피부과 의사의 길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36년이 지나 제가 정년을 맞고, 또 제 아들이 같은 피부과 의사의 길을 걷게 되니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를 잇는다는 마음으로 '계피부과의원'으로 개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영등포와 마곡동 두 곳에 '계피부과의원'이 있는 이유다. 특별한 속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분원도 분점도 아니다. 세상은 편을 가르고 비교하기를 좋아하지만 의술은 그렇지 않다.

물론 병원이 넘쳐나는 지금이라 끊임없는 경쟁을 치러야 한다지만, 그래도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마음으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 계 교수의 지론이다. 그리고 그것이 故 계택순 원장에게서 계 교수로, 그리고 계희상 원장에게 이어지는 가업의 철학이다.​

대한민국 피부과학의 발전을 견인한 의학계의 거목, 계영철 교수

​"의사가 되면서 무엇보다도 환자들에게 친절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어린 시절 아버님께 야단 맞는 환자들이 참 안타까웠거든요. 환자들의 이야기를 가급적이면 잘 들어주고, 설명도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했습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환자들을 대하다보니 병도 빨리 나았고요. 그러다보니 대학에 있을 때는 환자들이 참 많았지요. 그만큼 몸은 힘들었지만 그런 것들이 다 즐거움이었습니다."

​60·70년대 때려서라도 환자를 물가로 끌고 가던 시기가 지나고 80년대로 넘어오면서 보건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환자와의 소통이 중요해지면서 계영철 교수는 환자에게 '친절'은 매우 중요한 치료법이라고 굳게 믿었고, 그 믿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80년대의 계 교수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인품과 실력을 겸비한 의사로 환자와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그가 인정을 받은 것은 진료에서뿐만은 아니었다.

​계 교수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는 그가 이룬 수많은 업적들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경중을 따지기 어려우나 먼저 하나를 꼽자면 고대 피부과를 명문의 반열에 올린 것이라고 하겠다.

​계 교수는 연구와 진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후학 양성을 1순위로 두고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기에 앞장섰다. 임상 경험과 논문, 그리고 세계 학회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심도 깊은 연구를 지속했고,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또한, 계 교수가 2011년 5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22차 세계피부과학회'에서 재정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인 개최를 이끌었던 것도 주목할만 하다. 당시 세계피부과학회는 학술대회가 열릴 때마다 개최국에서의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개최 이후 세계학회 본부는 재정 운영의 중요성을 깨달아 운영에 변혁을 시도했고, 그 변혁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계 교수였다.

​이어 같은 해 계 교수는 대한피부과학회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국민과 호흡하는 학회로의 변화'를 이뤄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계 교수는 이사장 재임 당시 가장 먼저 '피부건강의 날'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했다.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질병에 대해 적극적으로 홍보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대상포진'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국민적으로 크게 부각되는 것이 없으니 제대로 치료 받지도 못하고, 제대로 치료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된거죠. 그래서 학회에서 대대적으로 매스컴을 통해 치료하면 좋아지는 병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한피부과학회의 노력으로 인해 이제 대상포진은 남녀노소 누구나 아는 병이 되었고,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예방접종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2000년도만 해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이 외에도 계 교수는 대한미용피부외과학회, 대한피부레이저학회 등 주요 학회를 이끌며 피부과학의 학문적 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했고, 현재도 대한여드름주사학회와 대한탈모학회, 대한피부외과학회 등 피부과와 관련된 수많은 학회에서 주요한 보직을 맡고 있다.

4대, 5대에 이어 앞으로도 오래도록 대를 잇는 '계피부과의원' 되기를

◆계피부과의원 계영철 교수(좌)과 계희상 원장(우)

"의사로서의 철학이라면 환자를 봤을 때 가벼운 질환이라도 가볍게 넘기지 말고 최선을 다해 진료하자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 제자들이나 동료를 대할 때도 마음을 속이지 말고, 편안하게, 거짓말하지 말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 이것이 가장 먼저가 아닐까요. 물론 어떤 경우에는 마음을 꾸미는 것이 더 편할 때도 있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면 그 순간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계영철 교수가 그동안 수많은 업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성품에서 기인된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계 교수가 지난해 8월을 기점으로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그것은 아버지 故 계탁순 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3대를 잇는 계희상 원장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의사가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앞으로 바란다면 아버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환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의학에 정진하는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진료'가 저를 비롯해 계희상 원장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의사라는 가업이 손주에 손주까지 이어져 '계피부과'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죠."

​계피부과의원이 지난 주 18일 개원을 했으니 오늘이 개원 2주가 채 되지 않은 날이다. 모든 병원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지만 계피부과의원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무 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故 계택순 원장이 처음 의사가 되던 1955년부터 계 교수를 비롯해 계희상 원장까지 3대의 역사를 말하자면 계피부과의원 앞에서 자신 있게 역사를 논할 수 있는 병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계영철 교수의 고집처럼 여기는 '진심과 최선'은 계피부과의원에 흐르는 전통임은 머지 않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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