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금옥 시인의 '밥그릇'

홍지헌 원장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

엠디포스트 승인 2018.05.08 15:39 의견 0

밥그릇

유금옥

옆집 개는, 종일
밥그릇하고 논다
전쟁터에서 굴러온 듯
짜장면 배달 가다 죽은 오토바이에서 튕겨 나온 듯
무슨 헬멧같이 생긴
밥그릇하고 논다 노려보다가 으르렁거리다가
할퀴다가 물어뜯고 게거품을 내다가 한다

―외롭진 않겠다

그래, 외롭고 배고픈 게 삶이다
세상에 밥그릇만큼 친한 놈도 없다
누가 먹다 버린 찌꺼기만 담았던 개밥그릇
이빨 자국이 있는 개밥그릇
쇠파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은 개밥그릇
꼬리가 돌돌 말린 개밥그릇
목줄도 안 맨 개밥그릇이
쇠사슬로 목줄 맨 개 옆에, 찰싹 붙어 있다


개는 사람들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사람의 모든 속성을 물려받았다. 이제는 그런 사실을 서로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어디서 개 흉을 보면 안된다. 제 낯에 침 뱉기이니까.(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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