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시인의 '병상록'
홍지헌 원장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
엠디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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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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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록
김관식(1934∼1970)
병명도 모르는 채 시름시름 앓으며
몸져누운 지 이제 10년.
고속도로는 뚫려도 내가 살 길은 없는 것이냐.
간, 심, 비, 폐, 신……
오장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 없이
생물학 교실의 골격 표본처럼
뼈만 앙상한 이 극한 상황에서…
어두운 밤 턴넬을 지내는
디이젤의 엔진 소리
나는 또 숨이 가쁘다 열이 오른다.
기침이 난다.
머리맡을 뒤져도 물 한 모금 없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등잔에 불을 붙인다.
방안 하나 가득 찬 철 모르는 어린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 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에서 살고 안락에서 죽는 것,
백금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요즈음은 환자의 시를 모으고 있습니다. 쓰일 데가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生,老,病,死 환자들의 삶 여러 과정에 개입하면서 결국은 우리 모두가 환자이고, 노인이고,
가난한 자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의사라는 직업인가 봅니다. 그 과정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 쓰이는 존재가 자식이라는 생각에도 공감합니다. 사랑스럽고, 고맙고, 미안하고, 애처롭고...... (20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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