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호 시인의 '저물녘'

홍지헌 원장이 들려주는 '시 이야기'

엠디포스트 승인 2020.03.09 09:13 | 최종 수정 2021.03.02 18:38 의견 0



저물녘


길상호

노을 사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역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남아 견뎌야 하는 시간

우리 앞엔 아주 짧은 햇빛이 놓여 있었네

바닥에 흩어진 빛들을 긁어모아
당신의 빈 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어둠이 스며든 말은 부러 꺼내지 않았네

그저 날개를 쉬러 돌아가는 새들을 따라
먼 곳에 시선이 가닿았을 때

어디선가 바람이 한 줄 역 안으로 도착했네

당신은 서둘러 올라타느라
아프게 쓰던 이름을 떨어뜨리고

주워 전해줄 틈도 없이 역은 지워졌다네

이름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돌아서야 했던 역, 당신의 저물녘


집으로 돌아갈 저물녘입니다. 빈 주머니에 빈 손을 찔러 넣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전쟁터로 보내는 심정으로 아침을 차려주는 집사람이 저녁을 준비해 놓은 집에서 지친 날개를 쉬려합니다. 오늘은 미스터 트롯, 내일은 이태원 클라쓰를 볼 예정입니다.(홍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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